데스크 칼럼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였다. 이날은 유신정권 당시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된 여덟 사람이 순식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우리의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날이다.많은 한을 안고 사형을 당한 그들에게 법원은 지난 1월23일 무려 32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자의적으로 저질러진 추악한 범죄의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이번 무죄 선고의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형이라는 형벌은 일단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기에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한데도 법을 앞세워 대법원 판결 다음날 새벽에 형을 집행한 부당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늦게나마 내린 것이다.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해 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가 피고인들의 혐의를 포함해 당시 사건이 총체적으로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과 중앙정보부 등 당시의 수사기관들이 몽둥이와 물, 전기고문 등 폭력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이끌어 내 유신을 반대하던 피고인들을 사형시켰다는 것이다.
30년전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법정은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빨갱이'로 몰리면 백약이 무효였던 시절에 '빨갱이 가족'이란 지독한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던 시간 동안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억울함이 오죽했겠는가.
하도 가난해서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려웠고 가난과 주변의 냉대와 핍박이 또 그 가난보다 더 고통스러웠다는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메이게 한다. 이번 무죄선고로 명예회복은 됐다고 하지만 이미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올 길이 없기에 유가족들의 아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그 당시 법을 앞세워 살인을 저지른 절대권력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서야할 터인데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을 당당히 내세우면서도 아직 이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어서 심히 유감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초야에 조용히 묻혀 사는 보통사람이라면 문제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인혁당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의식없이 넘어간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의 책임에 대해 명확히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당시 피고인들은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형이 집행되었다. 사법사상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속전속결'이었던 희대의 사건에 대해 흘러간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될 일이다.
국가권력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가족들의 아픔을 포근히 감싸안아야 한다. 비록 많이 늦긴 했지만 '인혁당사건'을 다시 조명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재심을 맡았던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가 오욕의 역사를 바로 잡은 것처럼 많은 분야에 산재해 있는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인혁당 무죄판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작은 디딤돌로 삼아 우리 사회의 자유와 인권이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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