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벌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는 글로벌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하고 밝은 이면에서는 아직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와 경영행태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런 잔재가 재벌총수의 일탈행위를 가능하게 한 만큼 한국사회를 '재벌공화국'라고 불러도 지나친 얘기가 아닐 것이다. 보복폭력 의혹사건으로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일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경찰의 출두요구를 두차례나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응한 것도 그만큼 대한민국의 법이 재벌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경찰은 김 회장에게 맞은 사람들과 목격자들의 진술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김 회장이 보복폭행을 주도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에 김 회장은 아들과 종업원의 화해를 주선하러 술집에 들렀을 뿐 납치와 폭력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무척 착잡하다. 대기업의 회장이 보복폭력 혐의로 경찰에 출두해 대질신문까지 받은 사실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또 김 회장의 사적 행위에 왜 회사의 경호팀과 법무팀이 동원돼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비난까지 사고 있다.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얼굴을 10여 바늘이나 꿰매는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그것을 본 아버지의 심정을 모를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때 김 회장이 했어야 할 일은 어디까지나 법에 호소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직접 나서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지시했다면 이는 2만5천여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의 회장이자 공인이 취할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처신을 했어야 옳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사적 보복행위는 가중처벌에 해당되는 행위이다.
이 사건에 국민적 시선이 집중된 만큼 경찰은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진실을 규명하고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늑장수사라는 비판과 함께 재벌 봐주기는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장의 말대로 진상을 명백히 밝혀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려는 한화그룹과 김 회장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대기업 총수답게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당당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인으로서의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사회지도층이라 한다면 보통 사람보다 엄격한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프랑스어에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높은 신분에 따르는 정신적 의무'라고 한다.
사회지도층 특히 상류층과 귀족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높은 도덕적 소양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은 물론 일종의 도덕적인 책무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한 국가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지도층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울분을 느끼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이참에 건전한 풍토가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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