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정 넘치던 '호박시루떡'과 교장선생님
잔잔한 정 넘치던 '호박시루떡'과 교장선생님
  • 영광21
  • 승인 200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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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되새기는 고마우신 참스승
유난스레 매서웠던 추운 겨울, 귀한 아들아이를 얻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땐 분만휴가도 강사지원이 안된 채 1개월을 겨우 얻어 쉬고 나오는 그런 시절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이들 수업걱정과 결강시간을 해결해 줬던 동료에 대한 미안한 마음때문에 1개월을 못채우고 죄인이 된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가게 됐다.

요즈음 소규모학교의 적정규모학교 추진으로 소규모학교들의 통폐합 추진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실정인데 그때는 전국 모든 면지역에까지 중학교를 신설했던 시절이었다.

나이베기 아이들과 적령기 아이들이 함께 섞여 공부를 정말 열심히 그리고 참 많이 시켰던 때였다.

매월 치르는 월말고사, 지역교육청에서 학교별 경쟁을 심하게 시켰던 연합고사, 밤새 원지를 긁어서 보충학습지를 배부해 줬던 일들…

그 누구도 불평 한마디없이 사명감과 소명감을 다 발동했던 시절이었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리고 보람으로 다가서는 일들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여장부이셨던 정재엽 교장선생님이 가슴 뭉클하도록 생각이 난다. 첫아이 출산 직후 시골중학교에서 모시게 된 분이다.

정말 어렵고 그리고 엄한 분으로, 교장선생님 앞에선 주눅이 잔뜩 들려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아주 조심스런 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는 당신만이 갖고 계시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열정적인 교육애가 어김없이 발동되셨다.

어느 때고 정말 당당하시고 추진력이 강하시며 인간미가 철철 넘치시는 멋진 분이셨다.

학교간 경쟁이 심했던 그 연합고사에서 지역 1등을 하게 되는 날이면 당신이 직접 쌀가루를 빻아 가을내 말려놓은 호박고지며, 밤이며, 팥을 두툼하게 놓아 만든 먹음직스런 호박시루떡이 어김없이 교무실 한복판에 시루 채 차려지곤 했다.

그리고 실력을 높인 고생한 여선생님에겐 남편선물을, 남선생님에겐 부인의 선물을 내조(외조)를 잘했다는 뜻으로 재치있게 보상하시는 잔잔한 감동까지 선물하신 분이었다.

결국 '호박시루떡'을 만들어 주시는 교장선생님의 정성과 선생님들의 열정은 비례관계로 아이들에게 작용된 셈이다. 먹는 기쁨과 함께 행복을 안겨 주셨던 교장선생님의 배려가 교무실 식구들의 응집력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는 책제목처럼 정재엽 교장선생님께서 수장으로 근무하셨던 학교들은 그 학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전성기를 만드시는 신화창조를 이루셨던 분이셨다.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학교운영기술의 탁월함을 보여주셨던 그런 분이셨다. 30여년이 지나 정재엽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던 그 시골학교에 교장으로 부임을 하게 됐다.

그때 그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학교운영위원장, 자모회장, 학부형이 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교직생활중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행복한 학교생활이었다. 제자들의 그 아이들을 또 다시 가르치는 재미를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정재엽 교장선생님처럼 세상의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스승의 날이라 그 제자들과 함께 교장선생님을 한번 모시고 싶었지만 이미 정신을 놓으신터라 그때는 이미 그 예쁜 학교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얼마 안돼 그 당당함, 추진력, 따뜻한 인간미를 간직하셨던 정재엽 교장선생님은 고인이 되셨다.

그 시절의 그 열정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다시 되살아나는 교육현장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다.

아이들의 성공적 삶을 위해 교사가 모두 헌신의 노력을 쏟았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운 오월이다.

교직에서의 참 스승이셨던 정재엽 교장선생님! 그 시절의 그 기품으로 영면하옵소서.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아름을 바칩니다.

2007년 오월에
김종숙<전남남도영광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