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독립과 여성의 지위향상에 헌신
민족독립과 여성의 지위향상에 헌신
  • 영광21
  • 승인 2007.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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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 조신성 선생
국가보훈처와 광복회가 5월의 독립운동가로 조신성(1873∼1953) 선생을 선정했다. 선생은 1873년 평북 의주에서 약 60리 떨어진 비현역 근처에서 출생했다.

선생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간 버린 상태였으며, 어머니는 선생이 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이 모두 불우했던 선생은 이에 낙담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았다.

24세 되던 해 이화학당과 상동 소재 교원양성소를 졸업한 후 상동 소재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28세 되던 해에는 이화학당 사감으로 재직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선생은 맹산독립단을 주도적으로 조직해 항일무장투쟁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 공무방해죄로 징역 6개월을 언도 받았다.

그후 옥고기간이 끝날 즈음 1921년 11월 다시 맹산독립단 사건으로 선생은 징역 2년 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고후 선생은 평원군 한천에서 사숙을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대동군 대평에서 취명학교를 운영했다.

평생을 민족의 독립과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헌신한 선생은 평생을 1년 내내 산동주 치마저고리 한 벌을 빨아 입을 정도로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하며,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생은 해방이 된 후 북한정권의 수립과정에서 소외되자 월남을 단행했다. 그후 선생은 대한부인회 부총재를 역임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 1953년 부산 신망애 양로원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남한에서의 쓸쓸한 삶을 마감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