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마치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사건들을 쉽게 꼽을 수 있다. 단순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사독재 시절에 악명을 떨치던 백골단과 같은 ‘경찰기동대’를 창설한 것이 그렇고 국방부가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이라고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어느 누리꾼이 비아냥거린 말처럼 여름 휴가철에 읽을 책의 목록을 골라주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백골단을 새롭게 등장시켜 무더위를 쫓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일도 국민을 너무나 사랑하는 정부가 에너지를 아끼면서 피서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라고 애써 자조를 해보지만 마음은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하늘을 나는 새가 좌우 날개의 균형으로 잘 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진보와 보수라는 양날개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당당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보수를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진정한 보수가 존재한다면 일련의 정부 조치에 대해 따끔한 ‘쓴소리’가 당연히 나왔어야 한다.
좌익과 우익은 본래 대립관계가 아니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상생관계이다. 일반적으로 좌익이란 말은 개혁이나 혁명과 같은 정치적 지향의 정치세력이나 인물을 가리키는데 프랑스혁명시대 국민의회에서 혁명의 급진화를 주장하는 일파가 의장석에서 보아 왼쪽에 있던 사실에서 연유됐다.
구체적인 좌익의 개념 여부는 그 시대 정치세력의 위치관계와 대항개념인 우익에 따라 정해진다. 혁명운동과 노동운동의 내부에도 좌파라고 일컫는 집단이 존재하고 또한 보수파의 내부에도 좌파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좌익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족속들이 있어 큰 문제다. 좌익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족속들이 좌익을 동반자로 여길 때라야 사회는 그 건강을 보전할 수 있다. 물론 아픈 역사가 남긴 유산이지만 이제는 치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릇되고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전체를 뚫어보는 지혜로운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가까운 의미로 ‘똘레랑스’란 말이 있다. 똘레랑스는 Tolerance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우리나라 말로 풀이하면 ‘관용’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관용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의 ‘너그럽게 용서하고 용납함’이란 의미가 아니다. 감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나와는 다름’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사상과 종교 등의 차이를 용인해 차별이나 억압 또는 배제의 근거로 하지 말라는 성찰 이성의 요구가 똘레랑스다. 똘레랑스는 공존과 상생의 조건이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전제가 된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양축인 건전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착오적인 일탈행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국의 보수세력은 ‘나 몰라라’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땅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학자든 언론인이든 정치인이든 보수 인사들 중 누군가는 애정이 담긴 비판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내뱉어야 한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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