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 의지로 극복
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 의지로 극복
  • 박은정
  • 승인 2010.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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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 전 영광군청 과장
소복이 내린 하얀눈속에 초연히 마당을 지키고 있는 성모마리아 동상이 잘 내다보이는 넓은 창이 1년 내내 지친 마음을 호젓하게 하는 아담한 서재에서 이정숙(73)씨와 마주했다.
혼자 지내기에는 다소 넓은 집을 지키고 있는 이 씨는 1998년 11월 영광군청 종합민원과장을 지내다 퇴임했다.

영광군청 여성과장 1호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이 씨는 1967년 공직에 입문했다. 장성군청에서 첫발을 내디딘 이 씨는 4년간 근무하다 결혼을 하며 영광군청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현재 주민생활지원과의 역할인 여성과 주민복지를 주로 담당했던 이 씨는 목포출신으로 목포여고를 졸업하고 조대음대를 1년 중퇴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4남4녀중 셋째로 태어난 이 씨는 학교를 마치고 수녀로 수도자생활을 8년간 했지만 아픈 몸이 나을 조짐이 없자 수녀원을 나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운동권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가톨릭농민회 전남도지부장을 지낸 이 씨의 남편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 체포돼 감옥생활을 했고 출소후에도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17년간 병원에서 생활하다 50대 후반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3남6녀의 큰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를 공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의 형제 모두를 대학과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하며 집안의 가장으로 고된 삶을 살았다. 게다가 친정부모도 이 씨와 살기를 희망해 나중에는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아 평생 가족 뒷바라지가 끝이 없었다.

그는 남편의 병수발, 부모공양, 자식교육 등 1인3역을 하면서도 공직생활에 충실해 당시 여장부로 통했다. 이 씨는 필리핀에서 신부로 있는 큰 아들과 피부과 원장으로 있는 작은 아들 등 2남을 두고 있다.

이 씨는 “남편의 병원을 오가고 시부모, 친정부모를 모시며 일과시간에는 공직업무를 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을 만나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뿌듯한 성취감에 힘겨움을 덜 수 있었다”며 “삶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고 처한 삶을 비관만 하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며 닥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가 현실을 극복하는 최고의 무기다”고 경험했던 삶의 지혜를 말했다.

공직을 퇴직하고 자녀교육을 위해 잠시 펼쳐놨던 광주살림을 정리해 남편의 고향인 대마면 원흥리 원당마을에 터를 잡은 이 씨는 천주교 영광성당 성가대 단장으로 활동하며 어린시절부터 타고 났던 성량을 맘껏 뽐내며 종교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