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oneheart@yg21.co.kr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 한파와 폭설 등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30대 젊은 시나리오 작가인 최모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의 월세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돼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질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데다 굶주린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젊은이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최고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를 졸업하고 장래가 기대되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이다.
관료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이제는 굴뚝이 아닌 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문화산업의 시대이고 앞으로는 문화콘텐츠가 우리를 먹여 살릴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얘기하는 통에 이미 우리는 그 말에 익숙하다.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대중음악이나 영상산업뿐만 아니라 순수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창작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선전하고 있어 우리 모두 문화산업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다른 분야와 달리 예측불가능성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또 어떤 사람이 흥행작가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실패속에서 성공한 작품 하나에 대부분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른바 수퍼스타만이 살아남는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창작인들 전체의 평균 소득수준은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
많은 사람들이 무명작가로 삶을 마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 세계를 휩쓴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안 캐슬린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도 오랫동안 무명작가였다. 만일 그녀가 무명작가로 끝나고 작품활동을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해리포터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 낸 작품들은 많은 이름없는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탄생한 것이다. 문화산업의 안정적인 유지와 지속적인 성장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많은 작품들이 자양분이 됐기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문화산업의 장기적인 육성정책은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실패와 실험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문화산업의 영역 안에 있는 인력들뿐만 아니라 아직 이 영역 안에 들지 못한 인력들까지 구조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제아무리 훌륭하고 감동적인 결과를 이뤘다고 해도 그 과정을 함께 한 사람들이 흘린 땀과 피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지평을 넓히고 다양한 실험작들이 창조적인 밑받침이 될 수 있도록 해 우리의 문화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앞날이 창창한 한 젊은이의 애석한 죽음 앞에서 문화콘텐츠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 그냥 말로만 끝나는 쭉정이가 되지 않으려면 문화산업의 문제를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인생이라는게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문득 환경운동가이자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Jain Goodall)의 말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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