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을 넘긴 정치권이 나아갈 길
이순耳順을 넘긴 정치권이 나아갈 길
  • 영광21
  • 승인 2011.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공자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여년 전에 <논어> 위정爲政편을 통해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 했다. 사람 나이가 오십에 이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남은 생은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한다.

주체성이 확립되는 불혹(不惑-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의 나이 마흔을 지나 오십이 되면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보편적 기준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때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편적 기준이라 함은 ‘나’라는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개념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널리 공유하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지칭한다. 공자는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천명 즉 하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비하면 현재는 평균수명이 훨씬 길어지고 어려움을 적게 겪어 나이를 구분하는 척도가 다르겠지만 그것을 일단 제쳐놓고 보면 필자도 어느새 지천명을 넘어섰다. 이제까지 뭐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으니 하늘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특히 개인적인 평안이나 가정과 식구들의 안일보다 공적인 정의를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나 때문에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행복을 얼마나 희생시켰는지 돌이켜보면 그저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불현듯 이른 새벽에 깨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깊은 회환에 빠지는 시간도 함께 길어져 짙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면서 굳이 위안을 삼기 위해 이제 인생이 영글어 가는 나이에 이르렀으니 더욱 정진하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과 서러움이 밀려온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접하던 지천명을 넘은 중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기야 우리 같은 필부가 감히 성인이라 불리는 분들과 견주는 자체가 말도 안되지만 그분들의 말씀과 행동을 닮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존중이다. 모두를 존중하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존중할 때 평화가 있다. 우리가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우리는 단지 한정된 시간만 이곳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해야만 한다. 생명 속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은 누군가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곳곳에 상처투성이다.

상처를 치료하는데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가슴을 변화시켜야 한다.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은 편견과 불신과 미움 대신 존중과 인내를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다양성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말만 앞세우는 무리들이 명성이나 얻으려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이다. 특히 지천명을 지나 이순(耳順-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깨닫는다는 예순)을 넘은 정치권이 벌이는 품새는 가히 가관이다.

그야말로 권력을 이용해 장사하는 부류이고 전공을 들먹이며 사기를 일삼는 족속이다. 그렇다고 정치인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물에 싸인 고기’이니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할 때만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