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해를 24절기로 구분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지난 6일이 그 24절기중 세번째인 경칩이었다. 경칩은 일어나다는 ‘경驚’과 겨울잠을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우러진 말로써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삼라만상이 움트는 경칩에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은 날이기도 해서 어두워지면 동구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졌다. 그래서 경칩은 토종연인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칩을 보내면서 우리 정치권도 삼라만상이 깨어나듯 벌떡 깨어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니 암담하고 씁쓸하기만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가 지난 4일 ‘입법로비’를 허용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의결한데 이어 해당 개정안이 이번달중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말에 여론의 뭇매가 가해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어영부영하는 모습이 가히 가관이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이기에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 법을 지켜야 할 작자들이 법을 어긴 자기 동료들을 챙기기 위해 상식 이하의 부끄러운 행위를 거리낌없이 하는 작태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최근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 대형 국책사업의 입지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수익성 있는 국책사업은 내 고장에 유치하겠다’는 생각은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대형 국책사업 유치를 둘러싸고 주민들뿐만 아니라 자치단체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국론분열 양상까지 가고 있으니 큰 일이다.
먼저 정부 예산만 3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은 충청권과 비충청권 사이에 첨예한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토지주택공사의 경우 토지공사는 전북 전주로, 주택공사는 경남 진주로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2009년 두회사가 통합되면서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또 동남권 신공항사업은 영남권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경남 밀양을 최적지로 보는 측은 밀양이 영남권의 교통중심지라는 이유를 들고 있고 부산 가덕도를 내세우는 측은 24시간 활용이 가능하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신공항을 건설하기 위해서 가덕도는 바다를 메워야 하고 밀양은 산을 깎아야 한다. 이렇게 다툼을 하느니 차라리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을 펴는 측까지 있다.
세가지 사업이 각각 수조원에 이르는 거대 국책사업이고 해당 지역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업유치를 놓고 지자체와 내년 총선을 앞둔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주장만을 앞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해법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으로 놔둘 수도 없다.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정책과 법이 편향되면 국민들이 믿고 살 수가 없다. 그리고 법률을 법률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지도자나 백성들이 똑같이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발 왜 ‘민심이 곧 천심이다’라는 말이 나왔는지 귀를 열어 공부 좀 해 단지 국회의원이 아닌 믿음직하고 든든한 선량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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