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다.”위의 글은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살다 돌아가신 김 구 선생께서 쓴 <백범일지> 가운데 ‘내가 원하는 나라’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언제 보아도 예외없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글이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조국을 잃고 일제의 잔학한 만행에 대항해 그토록 치열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빛 지혜가 철철 넘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선생의 품성과 자제력을 엿볼 수 있다.
뜬금없이 김 구 선생의 글을 감히 이곳에 인용한 것은 13일이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고 그 중심에 김 구 선생이 계셨기 때문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대내외에 선포했던 날인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2월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해 기념일로 제정한 뒤 1990년부터 정부기념행사로 거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태가 된 임시정부수립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못내 안타깝다.
당초에 임시정부는 조선민국임시정부·고려공화국·간도임시정부·신한민국정부·대조선공화국·노령정부·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 등 7개가 있었다.
1919년 4월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 도의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했으며 4월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했다.
국호는 상하이정부의 것으로 정했고 각료구성은 한성정부의 것을 따랐다. 자주독립의 일념으로 민족지도자들이 한 울타리에 모여 세계만방에 역사적인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해 한민족이 살아있음을 명백히 밝혔다.
이 때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조직으로서 미국, 중국 등 외국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했고 각종 교육문화운동을 전개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광복군 창설 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공화제 정부를 천명했다. 따라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법통위에 서있는 것이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상하이, 항저우, 충칭 등으로 수차례 청사를 옮기면서도 굳건히 지켜낸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의 정신은 지금도 겨레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격동의 연속이었던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일신의 안위보다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염원한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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