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살다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마늘밭에 마늘은 심지 않고 돈다발을 심었다고 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경찰이 굴삭기까지 동원해 밭을 파헤쳐 보니 마늘밭이 돈밭이었다. 이 돈은 자그마치 100억원이 넘었다.
언간생심 일반인은 꿈에서 조차 보기 힘든 액수다. 그리고 이 돈이 불법 인터넷도박 수익으로 드러났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불법 인터넷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거액을 챙긴 처남이 매형에게 맡긴 돈이라고 한다. 매형은 이 돈을 마늘밭에 묻었고 일부를 꺼내 쓰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도둑맞은 것처럼 엉뚱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울 요량으로 거짓진술까지 하다가 결국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어설프게 자작극을 펼쳤으나 자기 자신의 꾀에 스스로가 넘어간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불법 인터넷도박에서 거래되는 돈들은 대부분 지하자금으로 흡수돼 정상적인 자금흐름을 위협하고 있다. 불법 인터넷도박이 검은돈의 온상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하경제의 규모가 300조원에 육박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의 20%에 해당할 만큼 대단한 규모다.
이번 김제에서 발견된 돈은 전부 5만원권이다. 5만원권은 처음 의도와는 달리 지하자금으로 애용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하자금은 정당하지 않은 상속과 증여뿐만 아니라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돼 뇌물로 이용되기도 해 부패의 온상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을 단순히 우발적인 웃음거리로 여길 일이 아니다. 불법 도박자금의 실체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올해초 한 백화점에서 발견된 현금 10억원도 인터넷도박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도박 사이트는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더 빨리 중독되고 더 빨리 파탄에 이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터넷도박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사당국도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기는 해도 규모가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도박 운영은 날이 가면 갈수록 지능화돼서 수사기관의 단속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사당국이 지하자금을 근절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수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불법과 탈법이 여기저기서 저질러지고 있다.
이번 마늘밭의 돈다발 사건도 불법행위가 적발되더라도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잠시 교도소에 갔다가 오면 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법으로 모은 돈은 반드시 찾아내 환수하고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세청이 진정성있는 의기투합을 한다면 지하자금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돈뭉치 사건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겼고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매사를 경제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인간세상의 슬픔이고 아픔이다.
물질주의적인 서양생활의 확산,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획일화 된 사회가 만들어낸 사건이다.
한국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지나친 미국식 물질숭배주의가 빚어낸 현실인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로 인해 세상은 이기주의라는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낡고 썩은 배에 오른 것이다.
비워도 비워도 끝이 없는게 인간의 욕심이다. 이 욕심은 비단 재물뿐만 아니라 명예심도, 허영심도 다 욕심에 속한다. 죽으면 두고 갈 것들을 위해 근심하고, 분심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부르면 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결국은 시한부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는 동안 서로 나눌 줄 알고 섬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결점과 허물을 감싸 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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