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을 갖게 한 쪽에서 불신을 해소해야 마땅
불신을 갖게 한 쪽에서 불신을 해소해야 마땅
  • 영광21
  • 승인 2011.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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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oneheart@yg21.co.kr
핵발전소가 영광 땅에 처음으로 들어올 당시와 핵발전소가 건설돼 가동되고 있는 현재를 비교했을 때 과연 우리 영광은 어떻게 변화를 했는가?

애당초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지금도 여전히 지역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동을 하고 있으며 출력증강까지 서두르고 있다.

1979년부터 홍농면 계마리가 핵발전소 부지로 간택(?)된 까닭에 주민들은 여느 개발사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철거이주를 해야만 했다.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일궈온 기름진 땅과 풍요로운 칠산바다를 버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핵발전소라는 거대한 산업시설이 들어서면 비록 고향을 잃었을지언정 오히려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핵발전소 정문 주변인 성산리 일대로 이주한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적어도 앞으로 20~30년은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말에 이제 편한 세상이 오는가 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건설공사가 진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전체가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했다. 홍농면은 홍농읍으로 승격되고 사람이 모이는 만큼 돈도 함께 몰려들어 농협분소까지 생겼다. 사람들은 세들 방이 없어서 아우성쳤고 집값과 월세는 날로 치솟았다.

핵발전소 부지에 살다가 집이며 논밭에 대한 보상금만 손에 쥔 채로 막연하게 나온 이주민들에게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 뻗쳐 서둘러 집을 짓게 했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논밭을 사서 힘겨운 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집을 짓고 방을 들여 세를 주기만 해도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다.

핵발전소만 지으면 잘살 수 있을 것이란 꿈은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집집마다 새로 들였던 방 2,000여개가 순식간에 텅비고 말았다. 이주민들이 월세를 못 받는다는 것은 소득이 끊겼다는 것이다. 부쳐 먹을 논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을 몽땅 털어 집을 짓고 방을 들이는 데 써버렸으니 생계유지가 막막하기에 이르렀다. 이상은 성산리 지역주민들이 겪었던 아픔이었다.

그렇다면 영광군의 다른 지역은 당초의 선전처럼 발전을 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핵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상태였던 주민들에게 핵발전소만 들어서면 지역발전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영광 주민들의 가슴엔 불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핵이 무엇인가에 대해 차츰 알려지면서 그리고 내 지역에 건설된 핵발전소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다보니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자연스럽게 핵발전소가 어떤 곳이란 것을 알게 됐다.

알면 알수록 불안감 때문에 정신적 피해는 커졌다. 특히 지난 3월 그렇게 안전성을 장담하던 일본에서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서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만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돼버린 세상에서 생뚱맞게 정신적 피해를 들먹인다고 할지 모르지만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평안과 무관하지 않기에 정신적 피해는 곧바로 물질적 피해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들에 관한 정보를 비밀주의와 비공개주의로 일관하고 있어서 더더욱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한수원 사이에 놓인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한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고 함께 더불어서 고민을 하고 전 국민적인 합의에 기초한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불신을 갖게 한 쪽에서 인내를 갖고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 노력은 지역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형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