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oneheart@yg21.co.kr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술좌석에서 걸핏하면 마시는 폭탄주는 우리 사회에 생긴 신종 전염병으로 일종의 ‘집단자폐증상’이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도 자폐현상은 나타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구체적 신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타인과 공유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우도 약한 정도의 자폐증상이라 할 수 있다.
자폐증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타인과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공유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폭넓게 자폐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심각한 자폐환자든,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한 자폐환자든, 모든 종류의 자폐환자들이 공유하는 증상이 있다. 서로의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이 드러날까 두려운 까닭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폭탄주를 마시고 눈앞이 흐릿해져야만 타인과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
는 이 땅의 사내들 또한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술이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서를 공유하려고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정서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워 단순히 빨리 취하려고 마시는 술자리가 돼 버렸으니 어찌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유명한 뇌 생리학자인 와일드 펜필드(Wild Penfield)는 뇌가 담당하는 신체부위의 차이를 분석했다. 신체부위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각각 다르고 그것의 크기 또한 다르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감한 부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작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그 부분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뇌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 민감한 부위에 신경을 쓰는 것은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다보니 생긴 정서적 불안이나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가 ‘정서’를 공유하는 것인데 그게 원활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창구인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서로 다른 사람일지라도 동일한 정서를 느끼는 경험을 통해 동일한 의미를 유추해내는 능력이 발달한다.
이러한 능력은 거울뉴런(Mirror neuron-거울신경세포)의 기능을 통해 서로의 정서를 흉내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신경세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단어로 그것은 마치 관찰자 자신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뜻이다.
이러한 신경세포는 영장류 동물에서 직접 관찰됐고 인간에게도 있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조류를 포함한 다른 동물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본능적인 정서 공유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건강사회의 필수적 요건인 소통이 잘 되질 않는다.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 공유 체계가 제멋대로 망가져 있다. 또한 자기반성의 체계도 엉망이 돼서 모두들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서로 딴소리를 한다.
이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제길 소통은 무슨 놈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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