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 전 농촌지도소장

수확을 앞둔 곡식들이 낱알을 채우고 있는 들녘을 지나 묘량면 영양리 당산마을에 도착해 세월의 깊이가 베어나는 노신사 이현택(75)씨와 마주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촌과 호흡하며 살았고 광주에서 농고를 마친 것이 계기가 돼 농촌지도직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공직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말하는 이 씨는 고교졸업후 화순군청에서 잠시 근무를 하다 군에 입대, 제대후 일반 회사에도 몸담아 일했고 1964년 박정희 대통령 정권시절 총무처에서 공채한 농촌지도직 1기로 합격해 1996년까지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농업인상담소)에서 근무하다 퇴임했다.
근무초기 무안농촌지도소에서 일을 시작해 영광 진도 등에서 농촌 발전을 위해 일했던 이 씨는 마지막 퇴임은 고향인 영광에서 맞이했다.
나라 전체가 낙후된 가운데 개혁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며 변화의 정점을 달리던 시절에 공직생활을 펼친 이 씨는 농사개량·교육, 생활개선, 청소년육성 등 농촌의 개발과 부흥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 매진했다.
“지금은 주5일 근무제 실시 등으로 공직자들도 여가생활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지만 저희 근무시절만 해도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일했습니다.”
“30년 넘게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버팀목이 돼 준 것은 농촌발전을 위한 심부름꾼이라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못했을 것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도기를 겪은 많은 공직자들을 비롯한 각 영역 최일선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한 것이 오늘날 현대사회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된 것이지요.”
이처럼 젊음과 청춘을 받쳐 열심히 일하다 공직생활을 마감한 이 씨는 퇴직후에도 농자재 전문회사인 동부한농 영농상담자로 3년간 일하며 영광 장성 함평 무안 신안 등을 담당해 농부들은 만났다.
이후 영광농협 서부지점에서도 9년간 농업상담 역할을 담당해 작물재배방법, 농약사용방법 등을 농가에 전수했다.
슬하에 2남4녀의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아내와 6,000여평의 농사를 지으며 탯줄을 묻은 농촌을 섬기고 있는 이 씨는 노년의 중후한 무게를 남은 인생에 아름답게 싣고 있다.
현재 영광향교 장의를 맡고 있는 이 씨는 지역후손들에게 충효예절의 바른 유교사상을 전달하는 반듯한 어른으로 지나는 발걸음의 흔적을 올곧게 남기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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