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100년 묵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청사진을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가 내놨다.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매 정권마다 내놓았다 실패한 사안이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주민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지금의 지방행정구역은 아주 잘게 쪼개져 있어서 예산의 낭비가 많고 비효율적이다. 농촌은 사람이 모자라고 반면에 도시는 땅이 모자라는데도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 공동시설 하나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화장장이나 쓰레기 처리장 같은 시설은 혐오시설이라 해 서로 피하는 통에 지을 곳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보니 주민의 이익과 행정효율이 정치적 계산과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실패의 경험이 있음에도 이번에 다시 행정구역 개편안을 발표하게 된 배후에는 이런 아픈 배경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안의 통합기준은 우선 인구나 면적이 작아서 주민이 불편을 느끼는 곳이다. 다음으로 지리적 여건과 지역 경쟁력, 문화적 동질성 등이 제시됐다.
어떤 지역이든 통합을 원하면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투표권자의 1/50의 주민이 금년 연말까지 시도지사를 통해 중앙정부에 건의하면 된다.
그러면 2013년 주민투표로 이를 확인하고 2014년 7월 통합지자체가 출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230개 행정구역중 약 80개 정도가 통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늘 문제는 실행이다. 2009년 자율통합방식과 이번 조치가 원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당시 총 46개 시군에서 통합건의를 냈지만 결과는 마산·창원·진해 한 곳만 성사됐다.
이번에도 집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정책의 추진력 약화가 염려된다. 또한 차기 정권에서 실행한다는 일정도 걱정된다. 지금부터 지자체가 바삐 서둘러도 통합 보고시한인 12월 말까지는 겨우 100여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정구역 개편은 정치인들의 생명줄인 선거구제와 맞물려 있고 공무원의 자리와도 연동돼 있다. 또 통합을 두고 지자체간에 주도권 다툼도 예상된다. 그래서 통합건의 당사자인 지자체, 건의안을 조정하는 개편위, 총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실행의지가 강력하게 뒷받침해야 하는데 현재 상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개편안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될 것이 뻔하다. 실행에 있어서 가장 큰 열쇠는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다.
결국 이번 개편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필요성을 실감하는 주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제가는 스물아홉 살이란 젊은 나이에 <북학의北學議>란 책을 썼다.
1778년 사은사(謝恩使-조선 시대 임금이 중국의 황제에게 사은의 뜻을 전하기 위해 보내던 사절)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가서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학문이기에 정식으로 ‘북학北學’이란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편안함만 누리고자 하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날카롭게 꼬집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래에 인용한 그의 말은 거의 230여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국가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사대부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바라볼 뿐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모른 체만 하고 있을 것인가.”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