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총림 방장 수산 지종 스님 입적
고불총림 방장 수산 지종 스님 입적
  • 영광21
  • 승인 2012.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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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불갑사 염화실서…세납 91세·법랍74세
조계종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 지종 대종사가 7일 오전 8시44분 불갑사 염화실에서 입적했다. 세납 91세, 법랍 73세.

1922년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서 태어난 스님은 17세 되던 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여의고 3년 상을 올린후 19세에 백양사로 출가했다. 1941년 20세에 법안스님을 위패상좌로 만암 대종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그 다음해인 1942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1944년 백양사 강원을 졸업한 스님은 백양사 산내 암자인 청량원에 주석하고 있던 만암 스님으로부터 ‘이뭣고’라는 화두를 받고 매일 만암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의 기틀을 잡았다.

이후 스님은 1945~1948년 백양사 운문암, 정혜사, 나주 다보사 등에서 만공·인곡 스님 등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스님들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용맹정진 했다.

그러던 1948년 나주 다보사에서 정진할 당시 갑자기 상기가 일어 머리가 푹 익어버릴 지경이 되자 조실 인곡 스님이 “화두를 놓아버리라”고 했지만 화두를 놓고 싶어도 놓아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됐다.

결국 그대로 화두일념에 맡겨두고 지내는 중 갑자기 확연히 불조의 도리가 밝아지는 경지를 경험하고 “수중일월袖中日月, 장악건곤掌握乾坤 옷소매 속에 해와 달을 거두고, 손아귀에 하늘과 땅을 모아 쥐었네”라고 사자후를 토해냈다.

견성의 경지에 오른 스님은 이후에도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산 스님은 이후 대중포교와 불사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스님은 완도 신흥사를 시작으로 영광 불갑사 포교당, 부안 개암사, 태백 흥복사 등 낙후된 사찰의 주지를 맡아 사찰을 중창하고 포교에 매진했다.

또 백양사 본사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1966년~73년까지 세번에 걸쳐 주지를 맡으면서 근검절약과 공심으로 사중을 운영하면서 백양사가 교구본사로서의 사격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75년 목포 반야사에 주석하며 청년포교에 힘을 기울였고 1998년 영광 불갑사 선원을 개원했을 뿐 아니라 2001년부터 10년간 복원 불사를 진행해 백제불교초전성지 불갑사를 전통 수행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그런가하면 법성포에 마라난타 존자의 불교초전을 기념하기 위해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기념 성역화 불사도 진행해 백제불교 복원에 대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와 함께 1989년 종립학교 광주 정광학원 이사장에 취임해 청년포교 및 인재양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처럼 수산 스님이 평생 수행과 포교, 불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은사처럼 모셨던 만암 스님의 애정 어린 당부 때문이었다.

특히 만암 스님은 “출가사문은 이理뿐 아니라 사事에도 밝아야 하고 선사 스님들의 얼과 원력이 담긴 가람수호에도 공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대중교화 포교에도 진력해야만 불조의 은혜를 갚고 시은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고 늘 당부했고 수산 스님은 이 가르침에 따라 수행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원로회의 사무처는 수산 지종 스님의 장례를 5일장으로 해 11일 오전 11시 백양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거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