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령’의 하나로 상상의 동물이다.
그러나 실존하는 어떤 동물보다도 용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최상의 동물이다. 용은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를 모두 갖춤과 동시에 무궁무진한 조화능력을 가지고 있다.
용은 우리의 생활과 의식구조 전반에 걸쳐 깊이 자리하면서 수많은 민속과 민간신앙, 설화, 사상, 미술품, 각종 지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신라인은 나라를 지키는 호국용을 탄생시켜 우리의 사상사에서 빛나는 호국정신의 극치를 이루기도 했다.
용의 해에 출생한 용띠 사람들은 건강하고 정력적이며 정직하고 용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신뢰감이 두터운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돈을 꿈꾼다던가 아첨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에 용띠태생은 화를 잘 내고 흥분을 잘하며 고집이 세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다소 괴팍한 성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모든 띠들 중에서도 용띠는 애교 만점인 원숭이띠에 가장 끌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숭이띠는 용띠의 장엄함에 끌려 그들은 싸우지 않는 팀을 이룬다. 용띠와 쥐띠의 결합은 용이 강한 반면 쥐는 기술이 좋아 역시 성공적인 짝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힘을 합쳐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즉 용띠와 삼합三合을 이루는 띠는 쥐띠와 잔나비띠이다. 용은 쥐의 영리한 두뇌와 원숭이의 재빠른 몸집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용띠와 돼지띠는 원진관계이다. 용은 돼지 면상의 코를 싫어한다.
용은 열두동물의 형태를 모두 형상화한 동물인데다 잘 생긴 모습중에 돼지의 코를 형상화한 것이 용의 코다. 용은 돼지만 보면 자기 코를 생각하고 못견뎌한다. 즉 자기의 코가 돼지의 코를 닮아서 잘생긴 용모에 오점을 남겼으므로 돼지를 미워한다. 그래서 민간에서 결혼 궁합을 볼 때 용띠와 돼지띠는 서로 꺼린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 각 시대와 사회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그 모습을 상상하고 용이 발휘하는 조화능력을 신앙해 왔다. 따라서 시대와 사회환경에 따라 용의 모습이나 조화능력은 조금씩 달리 묘사되고 인식돼 왔다. 여러 동물의 특징적인 무기와 기능을 골고루 갖춘 것으로 믿어온 우리 문화에서 용은 웅비와 비상 그리고 희망의 상징 동물인 동시에 지상 최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숭배돼 왔다.
운행운우를 자유롭게 하는 물의 신으로서, 불교의 호교자로서 그리고 왕권을 수화는 호국용으로서 기능을 발휘하면서 갖가지 용신 신앙을 발생시켰고 많은 설화의 중요한 화소話素가 됐다. 용이 갈구하는 최후의 목표와 희망은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이 상상해 온 용의 승천은 곧 민족의 포부요 희망으로 표상되고 있다.
오래 사는게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
만나보았습니다 - 용띠생 김 원어르신
다가오는 2012년은 임진년 흑룡의 해다. 그냥 용의 해가 아닌 60년만에 돌아오는 검은 용의 해라고 해 많은 사람들을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흑룡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리는 상상의 동물로 동양, 서양에 함께 알려진 상상의 동물입니다. 이렇게 상서로운 기운을 가지고 있어 자고로 용을 임금에 비유해 임금님의 얼굴은 용안, 임금님의 옷은 용포, 정무를 볼 때 앉던 자리를 용상이라고 불렀지요.”
대한노인회 영광군지회 사무실에서 연하장 발송을 돕고 있는 김 원(73) 어르신.
군서면 가사리 일구마을에서 3남2녀중 둘째로 태어나 결혼해 슬하에 1남4녀를 두고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고 있는 김 씨는 다름 아닌 용띠생이다.
그는 “예전 어렵던 시절 중학교를 중퇴하고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다 24세 때 영광읍 학정리에 살고 있는 아내를 만나 결혼해 50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객지에서 생활해 고향에 남은 제가 부모를 봉양한 탓에 한번도 외지를 나가본 적이 없지요.”
6,000여평의 농사를 지으며 녹록지 않은 형편에도 자녀 모두를 남부럽지 않게 성장시킨 김 씨는 자식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어 여유로운 기쁨이 충만해 보였다.
“대한노인회 영광군지회를 매일 나와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곳 게이트볼장에서 회원들과 게이트볼을 치고 바쁜 사무실 업무를 돕고 있지요”라고 말하는 김 씨는 영광읍게이트볼 회장을 역임했고 영광노인복지회관이 건립되며 설립된 대한노인회 영광지회 게이트볼 회장을 올해부터 맡고 있다.
“예전 손으로 농사짓던 시절과는 달리 농기계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사짓기도 편하고 바쁜 농사철을 제외하고는 시간도 여유로워 바깥 활동을 편하게 하고 있다”는 김 씨.
그는 35년간 당뇨병을 앓아 오며 당뇨망막증 수술을 4번이나 했고 1994년 가망이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도 갔다. 또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이 마비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용띠생이라 그런지 ‘용’하게 위험한 상황을 신기하게도 극복하고 천운을 겪었던 지난 일들을 말했다.
“건강은 첨단의료로도 고칠 수 없는 마음먹기에 따른 신비한 치료방법이 있는 것 같다”며 “이제 70을 넘어 황혼 길에 접어들어 보니 혼은 산으로 가버리고 육신만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고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며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김 씨.
“자식들과도 서로 성가시지 않고 서로를 형편 닿는 대로 위하며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김 씨는 임진년 흑룡해인 용띠해를 ‘싱글벙글’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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