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고리봉
88고속도로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 남원쪽으로 달리다보면 손짓하는 산이 있다. 남원에서 곡성으로 갈 때도 병풍을 두른 듯한 모습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건만 바로 이 산이 고리봉(708.9m)과 문덕봉이다.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인근의 지리산에 가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산, 그 산을 봄바람 타고 간다.
88고속도로 남원휴게소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 내동리 마을이다. 그 아래 큰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가 금풍저수지이고 저수지 위에 자리잡은 마을이 용동마을이다. 산행은 용동마을에서 시작된다.
10여가구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집집마다 젖소와 양계장을 하는 대형축사가 있다. 산행은 양계장옆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넓다란 보리밭이다. 신나게 놀고 있던 꿩들이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간다. 소나무 숲에서도 소쩍새 울음이 구슬프게 들려온다.
그윽한 숲속길을 따라 문덕봉에 도착하자 불쑥불쑥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설악산을 연상케 한다. 문덕봉에서 사방을 휘돌아보니 남원과 순창 임실 일원의 산들이 엄마품에 안긴 아기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이곳까지 약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2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문덕봉을 떠나 40~50m나 되는 벼랑을 넘어 울창한 소나무밭에 도착하니 마치 푸른바다에 뜬 돛단배에 도착한 기분이다. 이어서 숲속길은 금새 바뀌고 다시 철탑같은 암봉이 나타나곤 한다. 무뚝뚝하면서 사람의 접근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도 다가가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길을 열어준다. 잿빛바위에 비친 소나무의 푸르름이 학처럼 고고하다.
앞에서는 손짓하고 뒤에서는 발목을 잡은 바위봉들 틈을 타고 그럭재에 도착해 두리봉으로 고도를 높인다. 적송숲이 그윽한 가운데 가끔 전망이 트인 곳에서 뒤돌아보면 섬진강을 옆에 끼고 걷는 산행길이 한없이 편안하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 봉황산에서 발원한 물이 임실과 순창을 지나 이곳 남원땅을 적신 다음 전남 곡성을 지나면서 보성강과 합류하여 강다운 위용을 갖춘다.
강은 구례로 진입하여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나눈 후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5백리를 돌고 돌아 흐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도가 낮은 강으로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원래 섬진강은 모래가 많다하여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우왕때 왜구가 섬진강을 거슬러 침입하자 새까맣게 몰려든 수십만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두려워한 왜구가 물러갔다고 하여 두꺼비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산행은 삿갓봉으로 이어지며 다시 암릉길이 시작된다. 삿갓봉에서는 전망은 좋지 못하지
만 바로 아래 전망바위에서 보는 고리봉과 섬진강 동악산의 모습은 압권이다. 눈앞에 다가선 고리봉의 바위가 거대한 성채처럼 웅장하고 그 옆으로 639m봉이 형제 마냥 다정하게 서있다. 우람한 고리봉의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아찔하다.
험한 암릉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들어 뒤돌아보면 지나온 삿갓봉의 아름다운 풍광이 금방 피곤함을 잊게 해준다. 드디어 고리봉 정상이다. 문덕봉을 지나 이곳까지 약 4~5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피곤함을 잊은 채 휘돌아보니 암골미 넘치는 산줄기가 거친 파도처럼 출렁인다.
들판을 적시던 유유한 물길의 섬진강은 고리봉과 동악산이 만들어 낸 7㎞의 협곡을 따라 이 협곡이 바로 밑에 와 있다.
하산은 정상에서 동쪽 만학골이다. 천만리 장군묘쪽으로 많이 내려선다. 만학골로 하산할 경우 반석이 깔끔한 바위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고 바위에 그려진 검정색 무늬는 빗물이라는 화가가 만든 수목화도 만날 수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길목이다.
< 등산 코스 >
코스 : ▶ 제1코스 : 용동마을 ~ 문덕봉 ~ 그럭재 ~ 삿갓봉 ~ 고리봉 ~ 천마리묘 ~ 삼귀 삼거리 = 약 6시간 ~ 7시간
▶ 제2코스 : 송내마을 ~ 그럭재 ~ 삿갓봉 ~ 고리봉 ~ 만학골 경유 방촌마을 = 3시간30분 ~ 4시간 소요
▶ 제3코스 : 약수정사 ~ 두바리봉 ~ 삿갓봉 ~ 고리봉 ~ 약수정사 = 약 2시간30분 ~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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