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기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아버지 일기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 영광21
  • 승인 2015.01.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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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일기장 / 박일호 읽기, 박재동 엮음 / 돌베개

“식목일을 맞아 비록 나무 한그루 심지 못해도 마음속에나마 나무를 심듯 삶의 기록을 심을까 한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듯이….”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이 글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거의 매일 쓴 <아버지의 일기장>의 첫 문장이다. 일기쓰기가 새해계획에 단골로 등장하면서도 몇달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20년 가까운 시간동안의 꾸준함이 놀랍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교사였던 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교단을 떠난 뒤 가난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자식 셋을 키우며 남긴 수십권의 일기장을 아들 박재동 화백이 엮어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일기 속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아진 아들은 일기에 적힌 내용을 읽고 회상하며 그의 엄마와 함께 짧은 글을 보태는데 그들만의 대화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만화방과 문방구를 운영하며 느낀 아버지의 깊은 속마음이 담겨있고 표현이 서툰 보통 아버지의 가족사랑이 묻어있다. 고단한 삶을 함께 견뎌내는 아내에 대한 연민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희망과 꿈으로 가득했던 40대 초반의 가장이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느라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엄마의 삶만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일기이기에 가능한 꾸밈없는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나의 유년시절의 모습들을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서 꺼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로의 여행이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누군가의 기록으로도 가능하다니 일기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 어떤 타임머신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아빠의 일기장을 유산으로 받고 싶어졌다. 갑작스런 부탁에 ‘무슨 일기냐’ 하실 줄 알았는데 허허 웃으시며 “딸 덕분에 일기 써야겠네” 하신다. 왠지 아빠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일기장만큼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흐려진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될 테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준비한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같은 고민을 할 지 모르는 나의 아빠의 모습도 상상해보니 미소가 번진다. 먼 훗날 마주하게 될 나의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어떤 일들과 추억이 살아 숨쉬고 있을런지….

안 은 경 / 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