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고준위방폐물 어떻게 할 것인가
기고 - 고준위방폐물 어떻게 할 것인가
  • 영광21
  • 승인 2016.09.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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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양록>과 굴비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을 맡고있는 입장에서 고준위방폐물 정책에 관해 영광군과 영광군의회 그리고 지역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부의 입장을 전하고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필자의 부덕의 소치로 또 지역사회에 불편함만 끼치고 발길을 돌렸다. 되돌아오는 열차안에서 3주전 읽었던 영광주민의 깊은 고뇌와 절절한 심정이 담긴 글이 떠올랐다. 영광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오늘을 살아가는 영광 사람들의 진솔한 심정이 구구절절 담긴 글은 당면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 성찰과 문제 해결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어 정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영광 주민과 진솔한 대화 원해
글을 쓴 박찬석 주민의 표현대로 영광지역 주민들이 원전지역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점은 늘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원전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도 직원들과 늘 나누는 고민 중의 하나다. 원전지역이라는 부담을 가진 분도 있지만 원전현장이 생업의 터전이신 분들도 있다.
한빛원전을 지역의 가장 큰 대표기업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 그들 모두 영광주민이다. 서로 얼굴이 다른 만큼 다양한 생각을 두루 살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기름 한방울 안 나는 에너지 빈국이라는 우리의 현실,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지역의 재정과 살림에 미치는 기여도, 필요에 의한 선택과 심정적 거부 사이의 제반 상황과 현실 등 그래서 현장이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정책과 관련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경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거부하면 실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을 시작한지 올해로 38년, 한빛원전이 영광에 자리한지 30년이다. 세상에 일방적으로 좋거나 나쁜 일은 별로 없듯이 그동안 한빛원전도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오늘은 어제까지의 역사이듯 이러한 모든 생각이 현재의 한빛원전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미숙하거나 일방적이기도 했지만 진전된 변화도 있었고 소통노력도 있었다.
고향을 걱정하는 <간양록>의 마음이 면면히 이어내려 온 것처럼 정부도 고준위방폐물에 대한 우려와 오해를 덜고 명확한 책임감을 갖고 지역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한다.
비록 지난주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안) 입법예고 전과 후에도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소중한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에 흡수시키고 관리절차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될 때까지 국민 여러분의 안심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법제화에 노력할 것이다.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과 법이 있어야
지금처럼 한빛원전을 비롯한 각 원전에 고준위방폐물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은 관리정책과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8년 동안 9번이나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부지선정이 무산되면서 아픔도 있었지만 모두를 성숙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정책적으로도 교훈을 얻는 축적의 시간이었다.
일각에서는 애초 원전이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면서 정부를 갈등의 진원지라고 질타하지만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는 일이 정부의 소명이다. 정책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견과 갈등을 수반하는 것은 열린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정책이 타당한가는 결국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게 될 것이고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조율해 나가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어려움이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다. 더구나 고준위방폐물은 지금껏 전기를 쓴 현세대뿐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안전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다. 그만큼 더 정책적으로 고민하고 한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뚜렷한 법·제도적 기반을 갖춤으로써 다음 정권에서도 일관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대폭 수용하고 1년 가량 전문가 TF운영을 통해 포화시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부지선정 단계와 절차에 대한 과학기술적 검증 등을 통해 기본계획을 발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8년 뒤면 한빛원전의 고준위방폐물 저장고는 포화를 맞게 되지만 아무리 정책추진에 박차를 가해도 그 전에 중간저장시설도 가동하기는 어렵다. 박찬석 주민이 현실적 주장을 하라고 한 것처럼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정부가 왜 굳이 지금 시점에 고준위방폐물 정책을 발표하고 법제화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다른 데로 옮기려고 해도 법·제도적 근거가 있어야 된다. 일각에서는 고준위처분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시적 건식저장시설이 영구처분장화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고준위 정책이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지역의 고준위방폐물을 역외의 다른 곳으로 반출할 수 있다.

건식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전혀 다른 것
이 문제는 정부를 믿고 안 믿고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의 영역이다. 한빛원전에 지어야 하는 건식저장시설은 선진국에서 수십년 운영하면서 안전성이 검증된 지상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2년부터 경주시 월성원전에서 운영중이다. 원자로에서 인출된 사용후핵연료를 수조에서 식힌 다음 건식저장시설에서 공기와 바람을 이용해 저장하게 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저장만 하는 한시적 시설이다.
반면 영구처분장은 암반을 뚫어 500m 이상 깊은 지하에 처분해야 하는 시설이다. 이렇게 과학·기술적 개념도 다를뿐더러 관리주체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르더라도 지금처럼 건식저장시설을 지어서 몇십년이라도 원전에 그대로 두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반대하는 지역 어르신들도 뵈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이 만들어져 있다.
법이 통과되면 로드맵은 청사진을 담은 계획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안이 된다. 단계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는데 정책이 결정되지 않았던 그동안의 시간처럼 관망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관망정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영구처분하기로 결정한 만큼 법이 통과되는 대로 한시적인 건식저장시설 설치방안과 제반사항은 지역주민과 함께 할 것이다.
굴비는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영광지역의 대표 얼굴 굴비처럼 지역주민들이 정부는 물론 오해에 굴하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무조건 정부를 믿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풍문이 아닌 정부가 법과 정책으로 명시한 내용을 근거로 해야 지금까지 이고 살았던 원전 부산물도 해결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지역의 다양하고 진솔한 의견을 가슴을 열고 소통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동희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