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사태에 사상 첫 특별사법경찰관 투입

■ 원전사 최악의 상황 원인은 ‘인재’
한빛 1호기에서 발생한 열출력 급증의 원인은 인재였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빛본부 측은 원전 출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폭발로 이어질 위험에 노출되고도 이를 파악조차 못했고 즉시 원자로 가동을 멈춰야 하는 매뉴얼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례없는 인재에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일 사상 처음으로 한수원에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시켰다.
■ 그날 원전에서는 무슨일이 있었나?
한빛본부는 10일 오전3시 원안위로부터 한빛1호기의 재가동를 승인받고 재가동에 앞서 원전의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는 제어봉의 제어능력 측정시험을 했다.
원자로 내 핵분열을 제어하는 제어봉을 내리면 출력이 떨어지고 이를 들어 올리면 출력이 올라간다. 제어봉은 위치에 따라 완전삽입인 0단계에서 완전인출인 231단계로 나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제어봉들은 모두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시험 시작 6시간30분만인 오전 9시30분 몇몇 제어봉들의 위치가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운전원의 조작 미숙으로 제어봉을 100단계까지 끌어올렸고 오전 10시31분 원자로의 열출력이 1분만에 제한치의 3.6배가 넘는 18%까지 급상승했다.
원자로 냉각재 온도는 302℃까지 올라갔고 증기발생기 수위도 급상승했다. 주급수펌프가 멈춰 섰고 보조급수 펌프가 가동했다.
오전 10시32분 한빛본부는 제어봉을 재삽입했고 안정을 되찾았다. 오후 10시2분 이상 발생 12시간만에 원자로를 정지시켰다.
■ 한빛1호기 무면허운전 논란
원안위 조사 결과 한빛본부는 원자로 안전의 핵심설비라고 할 수 있는 제어봉의 조작을 자격증도 없는 무면허 운전원에게 맡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빛본부는 “원자로안전법 84조에 따르면 원자로조종감독자 면허소지자의 지도·감독하에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직원도 제어봉 조작이 가능하다”며 “한빛1호기의 경우 정비원이 원자로조종감독자인 발전팀장의 지시·감독 하에 제어봉을 인출했는지 여부는 조사 중이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수원이 무면허 운전원에게 제어봉의 조작을 맡겼던 사례는 알려진 바 없다.
원자력계의 한 인사는 “신입직원들도 한수원에 입사해 원전에 들어가기까지 12개월 이상의 교육을 이수하는데 면허조차 없는 직원에게 제어봉의 조작을 맡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특히 실제 면허자의 감독이 있었는지 여부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감독면허가 있는 감독자와 무자격 운전자의 진술이 엇갈려 원안위에서 조사가 진행중이다.
■ 12시간 저출력 가동 적절했나?
한빛원전은 “출력이상 직후 2분만에 제어봉을 삽입해 10시33분부터 출력이 1%이하로 감소했으며 11시02분부터는 계속 0% 수준을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시간당 3% 이내 범위로 출력을 조절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1분만에 4.8%에서 17.2%까지 출력이 급격하게 변동했다는 사실은 열 충격으로 인한 손상의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급격한 열 발생으로 열을 식혀주는 증기발생기의 밸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제어봉에 기계적 고장이 발생한 시점에서 원전을 즉시 가동 정지시키지 않고 0%의 출력을 12시간이나 유지했다는 점은 원안위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체르노빌 사태의 재연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원전 출력이 25%까지 도달시 2중 안전장치가 가동돼 자동으로 출력상승을 막는다.
또 경수로 원전의 공학적 특성상 급속한 핵분열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원자력계는 이야기한다.
■ 제어봉 편차는 왜 발생했나?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제어봉의 출력 편차도 논란이다.
원전에는 4개의 제어봉 다발이 있으며 문제가 된 B제어봉을 테스트 하던 와중에 일부 제어봉의 위치가 어긋나는 문제점이 발생됐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완전 삽입상태로 둔 뒤 다시 제어봉을 66단계까지 올렸지만 일부 제어봉은 54단계에 머물렀다.
제어봉의 편차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한빛본부 ‘또’ 알리지 않았다
한빛본부는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도 이를 지역사회나 감시기구에 통보하지 않았다.
한빛본부는 13일 두차례의 보도자료를 통해 “원자로 제어봉 수동 인출과정에 냉각재 온도가 상승했다”며 “보조급수펌프가 자동 기동돼 원인을 점검하던 중 지침에 따라 원전을 수동정지했다”고 밝혔다.
열 출력 이상, 무면허 운전 등 주요사항은 20일 원안위가 이를 공개할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은폐논란으로 인해 지난 2017년부터 민관합동조사위원회가 활동중인 상황에서도 한빛본부의 불통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감시기구 관계자는 “속중성자 반응과 개념도 모르고 제어봉을 조작했다는 사실은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며 “원전의 안전을 감시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이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사회 반응은 …
전남도의회는 22일 ▶ 원안위 책임자 처벌 ▶ 한빛원전 관련자 처벌 ▶ 재발방지대책 마련 ▶ 지자체의 규제·감시참여 등을 요구했다.
또 같은날 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대표 황대권)도 한빛원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 청와대·국무총리실 조사 ▶ 산자부·원안위·한수원 책임자 파면 ▶ 한빛1호기 폐쇄 등을 요구했다.
한빛원전민간환경·안전감시위원회는 23일 긴급위원회를 개최해 대응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한편 한빛본부는 지난 21일 일부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발표하고 한빛1발전소 소장과 운영실장, 발전팀장을 직위해제했을 뿐 1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떠한 입장표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김진영 기자 8jy@yg21.co.kr